세남자를 통하여 코믹 이미지가 강했던 윤다훈이 최근 정극에 출연을 하면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황후의 품격과 하자있는 인간들 등을 통하여 꾸준히 대중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지요.



윤다훈 프로필

윤다훈 나이는 1964년 12월 30일생입니다. 윤다훈 본명은 남광우인데요. 그래서 딸 이름이 남씨로 시작을 하지요.


윤다훈 학력은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이며, 데뷔는 1983년 MBC 특채 탤런트로 데뷔를 했습니다.



윤다훈은 오랜 무명과 단역 배우 생활을 통하여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1991년 드라마 <가족>과 1996년 목욕탕집 남자들을 통하여 대중들에게 얼굴을 알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2000년 시트콤 <세친구>를 통하여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되지요. 그러나 세친구에서 보여준 코믹스러운 이미지 때문에 한 동안 고생을 하기도 합니다.


윤다훈 이혼루머 이유

윤다훈은 한 번의 결혼에 실패를 하고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사실 결혼이라고는 할 수 없는데요. 그 이유는 딸 남경민을 얻었을 때 정식으로 결혼을 해서 이혼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86년 육군현역으로 군복무를 할 때 휴가나와서 한 여자를 만났다. 그런데 내가 제대한 직후인 1987년 그 여자가 갓난아이를 안고 찾아왔다. 아이 엄마는 아이를 나에게 맡기고 떠났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이 여자가 바로 윤다훈의 딸 남경민의 친모이지요. 윤다훈이 딸 친모와 헤어진 이유라고 한다면 너무 어린 나이에 아이를 가지게 되었고 이것이 이별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당시 23살이었다. 처음에는 아이를 부모님 호적에 올렸다가 1988년부터 내 딸로 정식 입적시켰다. 몇년 후 그 여자가 새 가정을 꾸려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윤다훈이 어린 나이에 많이 고생을 한 것 같네요. 책임감 있게 자신의 딸을 잘 키운 것은 참으로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군대 제대를 한 후 윤다훈은 많은 고생을 했는데요. 한 때 정수기 판매왕이었다고 하지요. 그러다가 연기를 잊지 못해서 다시 무명 배우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윤다훈 아내(부인) 남은정

윤다훈 부인 남은정은 2005년 처음 만나게 됩니다. 남은정은 윤다훈보다 11살 연하였고, 청담동에 자리한 퓨전 한식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사업가입니다. 윤다훈 본명이 남씨이기 때문에 아내 남은정과 성이 같은데요. 그러나 성은 같지만 동성동본은 아니라고 하지요.



<당시 아내가 한식 레스토랑을 경영하고 있을 때였는데 보름 동안을 매일 식당에 갔다. 김민종이 같이 따라가주기도 하고 물론 계산은 내가 했다. 그 후로 김민종이 내 전화를 피하더라. 매일 똑같은 메뉴를 15일 먹으며 얼굴 도장을 찍는 것으로 작업을 했다> 윤다훈의 이런 적극성에 남은정과 결국 사귈 수 있게 됩니다.



윤다훈 아내와 나이차이는 11살 차이인데요. 하지만 그렇게 세대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고 합니다. <사실 나이차이 나는 것을 별로 못 느낀다. 오빠가 워낙 동안이고 내게 잘 맞춰줘 나이차이 나는 것을 모르겠다>



윤다훈 남은정 결혼은 2007년 5월에 올리게 됩니다. 그리고 딸 남하영을 낳게 되지요. 현재 윤다훈 딸 남경민 역시 서경대학교 연극영화학과를 졸업하고 연기에 도전을 하고 있는데요. 아직까지 큰 빛을 보지는 못했지만, 연기자로 성공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윤다훈은 나이가 어느 정도 들어서 그런지 중후하고 무거운 배역을 많이 소화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윤다훈이 앞으로도 지금처럼 좋은 연기를 보여주길 바라며, 좋은 작품으로 대중들과 만나길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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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란 아나운서는 현재 우사다(우리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에 출연을 하면서 방송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습니다.


김경란 아나운서가 우사다에 출연을 하면서 그녀의 인생사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는데요. 김경란 아나운서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김경란 프로필

김경란 나이는 1977년 9월 28일생입니다. 김경란 고향은 서울 출신이며, 이화여자대학교를 졸업했지요.

김경란은 1999년 부산 MBC 아나운서로 데뷔를 했고, 2001년 KBS 27기 공채 아나운서로 본격적인 방송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김경란은 2012년 8월 KBS 아나운서에서 퇴직하여 프리선언을 했는데요. 퇴사를 하고 프리선언을 한 이유는 시간을 좀 더 자유롭게 쓰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김경란이 제 2의 삶을 원했다. 해외 봉상활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 프리선언 후 우선 봉사활동에 전념할 것 같다> 김경란은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봉사 활동에 상당히 적극적이었는데요. KBS 해외봉사 프로그램 <희망로드 대장정> 제작발표회 및 콘서트 진행을 맡으며 봉사 활동에 대한 열의를 보여왔습니다.


김경란 남편 김상민 결혼

김경란은 현재 이혼을 했지만 국회의원 김상민과 결혼을 했습니다. 2017년 7월 김경란은 김상민과 만나게 되었고 불과 3개월만에 결혼을 발표했지요. 6개월만에 결혼식까지 올리게 되어 상당히 빠른 진행으로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김상민 의원은 김경란보다 4살 연상으로 수원 출신입니다. 아주대학교 사학과 18대 총학생회장을 지냈고, 새누리당 청년 비례대표로 정치에 입문을 했습니다. 김경란은 결혼 이후 방송 활동은 거의 하지 않았고, 결혼과 동시에 내조에 집중을 했습니다.


김경란 남편 이혼이유(이혼사유)

김경란은 2018년 4월 결혼 3년만에 합의 이혼을 하게 됩니다. 김경란 이혼사유(이혼이유)에 대해서는 성격차이로 이혼을 한다고 밝혔었지요. 김경란은 이혼 후 1년 7개월이 지나 <우다사>에 출연을 하여 이혼 심경을 밝혔지요.



이혼 후에 완전 거지꼴이 되었다. 마음이 너덜너덜해졌다. 이혼을 결심했을 때 엄마도 짐작하고 있었다. 힘들어 보였다고 하더라. 부모님께 그간의 일을 다 말씀드리니 엄마가 가슴 찢어지게 우셨다라고 고백을 했지요.



우다사에 출연을 한 것이 화제가 되면서 김경란이 대중들에게 좀 더 자신있게 다가갈 수 있게 되었는데요. <일단 제가 움츠려 있었어요. 모르는 살마들은 이혼한지 모르고 결혼 생활은 잘하고 있죠라고 물어보는 분들도 있었고요. 이제는 사람들에게 이혼한 사실이 내 현재 상태가 정확히 인지되어 개운하고 깔끔해요. 이혼 기사가 났지만 모두가 저를 집중해서 찾아보지는 않잖아요. 이규한씨는 누나 결혼한 줄도 몰랐는데 이혼했어라더라구요. 그래서 가만히 있을 걸 싶기도 했지만 정리가 깨끗하게 된 것 같아요. 많은 분이 제가 지금 혼자 살고 있다는 것을 정확하게 아는 것도 좋아요>



<무엇보다 아 이렇게 말해도 되는구나 움츠려 있지 않아도 되는구나해요. 저처럼 견디고 버티며 사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더라구요. 그런 분들에게 응원이나 댓글 디엠도 많이 받았어요. 누군가가 내가 한 고백에 공감하고 나만 이런게 아니구나 하는 작은 위로라도 되었다면 어렵게 한 이야기들이 헛되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분들에게도 그렇고 내 자신에게도 옥죄고 살지 않아도 되는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얘기해도 된다는 것을 느꼈어요>



우다사를 통하여 김경란의 솔직한 모습을 대중들이 볼 수 있고, 그녀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우다사 출연이 김경란에게 오히려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들은 가식적인 모습보다 그렇지 않은 모습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지요.


우다사를 통하여 단아한 아나운서의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김경란 그대로의 민낯을 진솔하게 보여주고 있는데요. 김경란이 앞으로 자신에게 더 관대해지소 스스로를 소중하게 여기며 우다사를 통하여 좋은 인연을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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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연수는 예능 불타는청춘을 통하여 큰 인기를 끌면서 이후 다양한 방송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50세를 넘긴 나이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는데요.


이연수는 80년대 큰 인기를 끌던 여자 스타였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연수와 관련된 다양한 루머들과 그녀가 은퇴를 했었던 이유에 대해서 알아볼까 합니다.



이연수 프로필

이연수 나이는 1970년 3월 7일생입니다. 이연수 고향은 서울 출신이며, 1980년 MBC 합창단원으로 데뷔를 했지요.


이연수는 초등학교 5학년때인 1981년 어린이 드라마 호랑이 선생님에 출연을 하면서 배우로 큰 인기를 얻게 됩니다. 성인이 되어서는 걸어서 하늘까지, 슬픈연가, 심야식당, 천상의 약속, 가시꽃 등과 영화, 중국 드라마 등에 출연을 하면서 인기를 끌게 되지요.



이연수는 호랑이 선생님에 출연을 하면서 각종 아역배우들의 CF를 휩쓸기도 했는데요. 그러나 성인이 된 다음 이미지 변신에 실패를 하면서 성인 연기자로는 별다른 인기를 얻지 못하게 됩니다.



이연수 은퇴이유

이연수는 잠정은퇴를 했었는데요. 성인 연기자로 큰 인기를 끌지 못했고, 그것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평범하게 살고 싶었어요. 제가 연기에 대한 열정이 부족했나봐요. 반드시 해내겠다는 확고한 마음도 없었고, 어린 나이에 많이 힘들었어요> <어릴 적 지치고 회의감도 들었어요. 연기를 쉬고 싶다는 마음이 커서 은퇴 결정을 내렸고, 어머니 역시 제 뜻을 지지해 주셨어요. 어릴 때부터 많은 시선을 받는 생활이 너무나 불편했어요>



이런 이유로 이연수는 1993년 은퇴를 결정하게 됩니다. 이연수는 2003년까지 아주 평범하게 살았고, 유학을 떠나기도 했는데, 6개월만에 다시 한국으로 귀국을 했지요.


이연수 복귀와 결혼 이혼루머

이연수는 중국 드라마를 통하여 다시 연기를 재개하게 됩니다. 드라마 강산미인과 엄마의 장국집이라는 작품을 통해서 복귀를 했지요. 이연수는 복귀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언급을 했습니다.



<지인의 소개로 중국에서 연기를 하게 되었다. 강산미인에서 나맞 주인공을 쫓아다니는 캐릭터 연기를 했는데 굉장히 재미있었다. 다시 연기를 하고 싶다는 열정과 자신감이 생겼다. 호랑이 선생님 조경환 선생님과 다른 선생님들에게 연기를 다시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조경환 선생님 덕분에 슬픈연가에 출연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연수는 은퇴를 한 이후 다른 연기자 선생님들과 꾸준히 연락을 하고 있었는데, 이를 통하여 좀 더 쉽게 연기 재개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네요.



이연수는 50대의 나이에도 여전히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는데요. 이 때문에 이연수의 결혼과 이혼 등에 대해서 관심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연수는 결혼을 하지 않았고, 이혼 재혼과도 연관이 없지요.


이연수는 사실 20대 중반에 결혼할 기회가 있었다고 합니다. <미국 유학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였어요. 이 무렵 결혼할 기회가 있었는데, 결실을 맺지 못했어요>



이연수는 은퇴 후 약 10여년간의 세상 경험을 통하여 다시 열정을 갖게 되었고, 이것이 다시 복귀를 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50대의 나이에도 여전히 아름다운 외모와 함께 불타는청춘을 통하여 단아한 모습을 보여주며 다시 제2의 전성기를 써내려가고 있는 이연수가 앞으로도 대중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길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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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세원은 우리나라 코미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중의 하나입니다. 여러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코미디계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지요.


서세원 프로필

서세원 나이는 1956년 3월 18일생입니다. 서세원 고향은 충북 청주시이며, 가족으로는 딸 서동주, 아들 미로가 있습니다. 서세원 학력은 경기대학교 국어노문학과이지요.



데뷔는 1979년 TBC <노래하는 곳에>로 데뷔를 했습니다. 서세원은 희극인으로 연예계에 데뷔를 했고, 이후 방송인, 영화감독 그리고 솔라그라티아 교회 담임 목사를 맡기도 했습니다.



서세원 성공스토리

서세원은 경기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79년 TBC 라디오 개그 콘테스트를 거쳐 <노래하는 곳에>로 데뷔를 하여 코미디언으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서세원은 1990년대부터는 TV 토크쇼나 오락프로그램의 MC 활동에 치중을 해왔고, 영화 방면에도 꾸준한 경력을 쌓아 2001년 서세원 프로덕션을 통하여 영화 <조폭 마누라> 제작하여 상업적 성공을 이뤘습니다.



서세원은 CF모델로도 유명한 서정희와 결혼을 했고, 1남 1녀를 두었지요. 서세원 아들 서동천은 2007년 3인조 록밴드 미로밴드를 결성하고 미로라는 예명 가수로 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서동천은 2015년말 내연녀와의 사이에서 사생아를 득녀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지요. 그리고 서세원 달 서정희는 엄친녀로 머리도 상당히 좋고, 방송에도 자주 출연을 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지요.



서세원 부인(아내) 서정희 이혼이유(이혼사유)

그러나 서세원은 전부인인서정희와 결혼을 한 후 오랜 결혼 생활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요. 여러가지 논란으로 그들의 결혼 생활은 순탄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서세원이 전 아내 서정희를 폭행하는 사건입니다. 폭행 사건은 CCTV에도 공개가 되며 사회적으로도 큰 논란이 되었지요.



서세원 전부인 서정희의 고통을 견디다 못한 아들 서동천과 딸 서동주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이혼시키는 소송을 제기했는데요. 결국 서세원 서정희 부부는 아들과 딸에 의하여 결혼 생활 32년만에 이혼을 하게 됩니다.


서세원 부인 이혼이유(이혼사유)는 서세원으로 인한 강합적인 결혼 생활과 폭행 사건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서세원은 이 사건으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지요. 이 과정에서 서정희는 서세원의 폭행과 불륜을 주장하였고, 두 사람은 2015년 8월 합의 이혼을 하게 됩니다.



서세원은 이혼 이후 알려진 보도에 따르면 <서세원이 새로운 가정을 꾸렸다. 한때 언론을 통해서 알려졌던 여성과 현재 용인에서 거주 중인데 두 사람 사에는 딸도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한국과 자카르타를 오가면서 주택 조성 관련 사업을 하고 있는데 사업이 꽤 잘 되는 모양이다. 수십억 원대의 수익을 내고 있다고 한다. 또 당분간은 연예계나 목사로서의 복귀도 없을 계획이라고 한다> 라고 알려졌었습니다.



서세원 캄보디아

서세원은 방송 활동 외에도 사업을 꾸준히 해왔습니다. 가장 최근 소식이 서세원이 캄보디아 스포츠TV를 운영하게 되었다는 소식인데요.


서세원은 5년 전부터 캄보디아 도시건설 사업에 관심을 가지고 일을 진행하던 중에 캄보디아 문화관광부 장관의 방송국 운영에 관한 제의를 받고 캄보디아 스포츠TV를 세우기로 합의를 했다고 합니다.



서세원은 현재 캄보디아국가올림픽위원회 내 가건물에서 방송 송출을 준비하고 있으며 다음 달부터 방송사 건물을 착공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현재 서세원은 재혼한 아내와 그 사이에 낳은 딸 등과 캄보디아를 오가며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서세원은 결혼 생활을 실패했지만, 방송 활동과 사업으로는 꽤 성공을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편으로는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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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석규는 영화와 드라마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한석규는 뛰어난 연기력을 바탕으로 좋은 작품으로 대중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한석규에 대해서 한 번 알아볼까 합니다.



한석규 프로필

한석규 나이는 1964년 11월 3일생입니다. 한석규는 목소리가 참 좋은 배우인데요. 아니나 다를까 한석규는 성우 출신입니다. 한석규는 1990년 KBS 성우극회 제22기로 입사를 하여 성우로 활동을 하다가 이듬해인 1991년 MBC 탤랜터 공채 제20기로 재입사를 했습니다. 성우에서 탤런트로 전향한 케이스이지요.



한석규는 1993년 <아들과 딸>을 통하여 큰 인기를 끌면서 배우로서 전성기를 맞게 되지요. 그리고 1994년 <서울의 달>로 톱스타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이후 한석규는 영화로 활동 무대를 옮겨 흥행 배우로도 거듭나게 되지요.



한석규를 대표하는 영화로는 은행나무 침대, 초록물고기, 넘버 3, 접속, 쉬리, 팔월의 크리스마스 등입니다. 2010년 이후에는 베를린, 프리즌, 천문 등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석규는 부드러운 이미지 때문에 다양한 광고에도 많이 출연을 했는데요. 특히 커피 광고에도 출연을 하는 등 CF 스타로서도 주가를 올렸습니다.


한석규 부인(아내) 임명주

한석규 가족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한석규 아내 임명주 역시 성우시절 만나게 되었는데요. 임명주는 KBS 21기 성우이고, 두 사람은 KBS 성우극회 시절부터 사귀게 되었습니다.



한석규 임명주는 3년의 열애 끝에 백년가약을 맺었는데요. 슬하에 딸 2명과 아들 2명을 두고 있습니다. 한석규 이혼, 한석규 재혼 등의 루머는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한석규 최민식 그리고 천문

한석규가 세종을 연기한 <천문:하늘에 묻는다> 는 오랜 지기 최민식과 20년 만에 함께한 작품입니다. 한석규는 세종 역으로 최민식은 장영실 역을 출연을 했지요.



한석규와 최민식은 서울의 달, 쉬리를 통하여 엄청난 인기를 끌었는데요. 이 때문에 20년 만에 호흡을 맞춘 두 사람의 작품이 큰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제가 세종과 장영실에 관한 이야기를 쭉 늘어놓는다면 대부분 사람들은 저 사람 이상하네. 재미없다. 정도로만 생각할 거예요. 나중엔 제 얘길 거의 안 듣겠죠. 그런데 그걸 또 재밌다고 이런 저런 의견을 내는 사람이 바로 민식 선배예요. 좋은 사람이고 이야기가 통하는 사람이죠. 남들이 재미 없어 하는 이야기도 잘 들어주고 대화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사람, 같은 일을 꾸준히 해오고 나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는 사람. 저랑 관심사가 같아서 잘 어울릴 수 있어요>



한석규 낭만닥터김사부

한석규는 2016년 11월 SBS <낭만닥터 김사부>를 통하여 두번째 연기대상을 수상했습니다. 첫번째 연기대상은 2011년 10월 SBS <뿌리깊은 나무>를 통해서이지요.


낭만닥터 김사부는 현재 시즌2가 방영되고 있는데요. 이곳에서도 한석규의 충만한 연기력을 보는 재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한석규는 어느덧 연기 경력이 30년이나 되었는데요. 연기는 죽어야 끝나는 공부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합니다. <연기는 나를 반응하게 만든다. 연기를 통해 살아있음을 느끼고 계속 갈망하게 된다>



<신구 선생님 앞에서 저희들은 꽃으로 치면 지고 있다고 말했다가 크게 혼났어요. 신구 선생님이 너희가 무슨 지고 있는 꽃이냐. 이제 막 피기 시작한 꽃봉오리라고 하셨어요.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남다르더라고요>


한석규가 앞으로도 지금처럼 좋은 연기를 많이 보여주길 바라며, 많은 후배 연기자들에게 본보기가 되는 배우로 오랫동안 사랑 받길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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