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현우는 가수에서 완벽하게 전향하여 최근에는 배우로서 다양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배우로서 활동이 워낙 두드러지기 때문에 지현우가 가수 출신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이 있는 것 같네요.


지현우 프로필

지현우 나이는 1984년 11월 29일생입니다. 지현우 키는 187cm이며 학력은 덕수고등학교, 성균관대학교 연기예술학과입니다.



지현우는 기타리스트입니다. 2001년 고등학교 2학년 때 문차일드의 기타리스트로 데뷔를 했었고 그룹 더 넛츠로 활동을 했지요. 가수로서 인기를 얻으며 활동을 하던 중에 2002년 드라마 <학교이야기>로 배우로 데뷔를 했고, 이후 드라마 작품에 매진하게 됩니다.



2004년에는 시트콤 <올드미스 다이어리>에서 지피디역으로 출연을 하여 국민연하남의 시초로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게 되는데요. 프로그램의 인기와 함께 당시 큰 사랑과 인기를 얻게 됩니다. 이후 다수의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을 하며 배우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현우 가수 복귀

지현우는 2020년 1월 10일 <사거리 그 오빠>라는 밴드를 결성하여 가수로서 9년 만에 복귀를 하게 됩니다. 이후 다수의 방송에 출연을 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사거리 그오빠라는 밴드명은 <오빠라는 호칭 때문인지 되게 친밀감 있고 아무래도 현우 팬분들이 현우보다 누나가 많다. 팬카페 이름도 누나본능인데 그 누나들도 오빠라고 저희를 부르실 수 있으면 굉장히 좋지 않을까 싶다>라며 같은 멤버였던 윤채가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지현우 유인나 결별이유

지현우는 배우 유인나와 공개 연애를 한 적이 있습니다. 2012년 드라마 인현왕후의 남자에서 유인나와 호흡을 맞춘 지현우는 드라마를 계기로 연인 사이가 되었습니다.


지현우는 드라마의 마지막회에 시청자들과 함께 시청하는 이벤트에서 유인나에게 사랑한다고 고백을 하여 엄청난 화제가 되었습니다.



유인나는 <(지현우를) 좋아한다. 확신이 생겼다. 종방연 때 어마어마한 고백을 받고 정신이 없었다. 당황스러우면서도 고마웠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표정과 눈빛이 진지했고 앞뒤 재지 않고 용기낸 게 진심같이 느껴졌다. 현우씨를 만나 인현왕후의 남자는 끝났으니 이제 유인나의 남자로 시작해보자고 했다. 시작하는 연인이니까 예쁘게 봐달라>



하지만 열애 인정 후 2012년 8월 지현우가 군입대를 했고, 2014년 5월 전역을 했는데, 당시 지현우의전역식에 참석하지 않은 유인나에 대한 질문을 받자 지현우는 대답하기 곤란하다고 언급을 했는데요. 두 사람은 지현우의 군입대 도중에 결별을 하게 되었고 공개 열애 2년 만에 결별 사실을 밝혔습니다. 두 사람의 결별 이유는 성격차이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현우 결혼 생각

지현우 나이가 30대 후반이기 때문에 결혼적령기를 넘긴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동안 외모에 잘생긴 외모 때문에 유부남 배역보다는 싱글 남자 배역을 많이 맡고 있는 것 같네요.



지현우는 최근 드라마 인터뷰를 통하여 결혼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너를 이해해주는 상대를 만나기는 힘들 것 같다. 그런 여자는 세상에 없다. 작품이 끝나면 혼자서 여행을 떠나는 스타일이다. 이번에도 혼자 속리산에 다녀왔다. 이런 모습을 이해해주는 사람은 없다고 하더라. 아직은 제가 불안정한 상태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결혼에 대한 생각은 별로 없다. 외로운 마음은 있지만 결혼한다고 전혀 외롭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지현우는 2020년 드라마 <연애는 귀찮지만 외로운 건 싫어!>에 이어서 영화 <빛나는 순간>을 통하여 대중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지현우가 앞으로 지금처럼 대중들에게 좋은 음악 그리고 좋은 작품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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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드라마 스타트업이 대중들의 관심을 받으며 출연 배우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는데요. 특히 배우 김선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김선호는 1박2일이라는 예능을 통하여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었는데 드라마 <스타트업>의 화제로 그의 인지도는 더 높아지고 있습니다.



<드라마도 잘되고 있고 너무 스타가 되지 않길 바란다. 너무 톱스타가 되면 불편하다. 어느 정도 말 섞을 수 있는 스타가 됐으면 좋겠다. 그 대신 50년 활동할 수 있길>이라며 오죽하면 문세윤이 이런 말을 했을까요? 그만큼 김선호가 현재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는 것입니다.



김선호 프로필

김선호 나이는 1986년 5월 8일생입니다. 김선호 키는 183cm이며 학력은 서울예술대학교입니다. 김선호 소속사는 솔트엔터테인먼트이며 데뷔는 2009년 연극 <뉴 보잉보잉>으로 데뷔를 했습니다.


김선호는 연극, 뮤지컬 공연 등을 통하여 연기력을 다진 배우입니다. 2009년 연극 <뉴보잉보잉>으로 데뷔를 하면서 다수의 작품에서 매력적인 캐릭터를 연기하게 되며 연극계의 아이돌로 불렸지요.



연극계에서 인정 받은 김선호는 활동 반경을 방송계로 넓히게 되었고, 첫 드라마 데뷔작은 2017년 KBS2 <김과장>이라는 작품입니다. 연극계에서 활동한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방송에 데뷔를 했지요.


그렇기 때문에 김선호의 연기력은 신인 드라마 연기자치고 준수한편이었고, 캐릭터를 잘 소화해내는 인물이었습니다. 이더 2018년 tnN 드라마 <백일의 낭군님>에서 현감 정제윤 역을 맡으면서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이후 주연급 배우로 성장을 하게 되지요.


김선호는 큰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배우로 성공을 한 케이스입니다. <초등학생 때 어머니와 집에 있는데 강도가 들었다. 멀리서 언뜻 보고선 아버지가 들어오시는 줄로만 알았다. 어머니가 칼에 찔리는 큰 사건이 벌어졌는데 내 방에서 그걸 모르고 있었던 거다. 아직도 기억난다. 장난감 상자가 와르르 무너져 장난감 기타가 넘어지며 내던 소리 어머니가 피를 흘리며 끌려 가실 때 어머니와 눈이 마주친 순간, 강도는 소리를 지르고 어머니는 저항하고...>



<그 이후 늘 내 뒤에 누가 서 있기만 해도 불안했다. 선생님이 책을 읽으라고 일으켜 세우면 숨 쉬기도 힘들었고 시험 감독하던 선생님이 걷다가 등 뒤쪽에 멈추는 게 느껴지면 머리가 하얘졌다. 그러던 나로서는 사람들 앞에 나서는 일을 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노래하는 것도 좋아하고 음치, 박치도 아니다. 어릴 때 집에 강도가 들었고 어머니는 칼에 찔리고 저는 침대에 숨어있던 일이 있었는데 이 기억이 트라마우가 됐다. 그 뒤로는 수능 볼 때도 감독관이 와서 지나가면 날 보고 있는 것 같아서 생각이 멈춘다. 책을 읽으라고 하는 사람들이 보고 있으면 숨 고르기가 안돼서 글을 모르는 사람마냥 읽은 적도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뒤에 누가 있으면 소변도 못본다>



이런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배우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김선호가 대단하게 느껴지는 것 같네요. 김선호 연관검색어에 김선호 부인, 김선호 아내, 김선호 결혼 등과 같은 연관검색어가 있는데요. 이는 김선호가 드라마 속에서 유부남의 역할로도 출연을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김선호는 아직까지 결혼을 하지 않은 미혼이며 결혼에 대해서 생각을 밝힌 적도 없습니다.



김선호 1박2일

김선호를 대중적으로 인기 있게 만들어준 작품이 바로 1박 2일입니다. 김선호는 1박2일에서 허당의 매력을 보여주며 마치 이승기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는데요. 이런 허당 매력 때문에 김선호에 대한 대중들의 인기가 더 높아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선호가 드라마 <스타트업>을 통하여 큰 인기를 얻게 되자 1박 2일 멤버들 역시 불안감에 휩싸였습니다. <댓글에 하차하지 말라고 하시더라. 나는 이들보다 오래 할 거다. 악착같이 끝까지 버틸 것이다>



김선호가 대단한 이후는 1박2일과 스타트업을 통하여 높은 인기를 끌고 있음에도 여전히 연극에 대한 애착을 보이며 연극 활동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감독님과 작가님에 대한 큰 신뢰가 있었기에 대본을 처음 읽는 순간 함께 하고 싶었던 작품이다. 이렇게 예쁜 드라마 안에 내가 있구나하는 감동이 원동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바쁜 일정에도 가급적 본방사수를 한다>라고 밝혔습니다.


드라마와 예능을 통하여 대세 배우 중의 한 명이 된 김선호 앞으로의 활동을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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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승환은 배우로서도 성공은 했지만 공연기획자로 큰 성공을 거둔 인물 중의 한 명입니다. 송승환은 최근 원인 모를 병으로 실명 위기에 놓였다는 사실이 알려져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만들었는데요. 다행히도 현재는 시력이 나빠지던 것이 멈춘 상태라고 합니다.



송승환 프로필

송승환 나이는 1957년 1월 10일생으로 고향은 서울 출신입니다. 송승환 데뷔는 1965년 9살의 나이로 아역 성우로 데뷔를 했지요. 이후 다양한 드라마를 통하여 큰 인기를 끌었고, 연기자뿐만 아니라 MC로도 활약을 합니다.


송승환은 난타 제작자로 유명한데 우리나라에서 몇 안되는 성공한 문화 CEO 중의 한 명이지요. 송승환은 어린 시절 아역 성우로 데뷔를 하게 되는데요. 어렸을 때부터 타고난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역 성우로 좋은 평가를 받은 송승환은 자연스럽게 연기도 시작하게 되지요. <사실 고등학교때까지는 연기를 취미 생활로 여겼다. 그래서 대학 가서는 새로운 일을 할 생각으로 재수까지 하면서 한국외국어대학아랍어과에 입학을 했다. 당시 중동 건설 바람이 불던 시기였고, 사람들이 아랍어에 관심이 높던 시기였지요>



그러나 송승환은 2학년 때 자퇴를 하며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 다시 극단으로 돌아가 연기를 새로 시작하게 됩니다. 이후 송승환은 청춘 스타로 성장을 하게 되지요.


송승환은 연기자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을 당시인 1985년 6월 미국 유학을 떠나게 됩니다. 사실 송승환은 미국으로 여행을 떠난 것인데요. 세상 구경 삼아 미국으로 떠난 것이지요. 이 때부터 그는 공연 제작자로서의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송승환 아내(부인) 박찬실

송승환은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현재의 부인 박찬실을 만나게 됩니다. <1981년 아내를 처음 만났어요. 당시 젊음의 행진을 보고 있었는데 자주 가던 카페의 단골 손님이었죠. 어느날 아내와 우연히 합석하게 되었는데 볼수록 마음에 들더라구요. 그래서 진지하게 만나기 시작했어요>



두 사람은 약 4년을 사귀다가 약혼만 한 상태에서 1985년 미국 유학을 떠나게 됩니다. 송승환은 당시 가난한 상태였는데 아내의 도움을 많이 받게 되지요. 이후 송승환은 1987년 한국으로 일시적으로 귀국하여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약 1년 정도 문화 유학을 하게 되지요.


송승환 자녀는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이 때문에 송승환 이혼, 송승환 재혼 등의 루머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아내와 동갑내기예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아내와 모든 일을 함께하죠. 여행도 자주 가고 우리 부부사이에 아이가 있다가 없으면 허전할 텐데 처음부터 없었기 때문에 잘 모르겠어요>



<처음에는 일부러 아이를 갖지 않았는데 나중에는 아이가 생기지 않아서 그냥 우리 부부끼리 살기로 했어요. 지금은 저나 집사람이나 아이가 없는 생활에 익숙해져 있어요. 그래서 아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은 별로 안하는 것 같아요>


송승환 난타 성공이유

송승환은 1988년 귀국하여 연기자로 다시 돌아갑니다. 그리고 한동안 연기 생활을 하다가 1996년 PMC 프로덕션을 설립하고 1997년 유명한 <난타>를 제작하게 되지요.



송승환은 난타의 성공이유를 이렇게 언급했습니다. <난타가 성공한 이유는 한국적인 사물놀이 속에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정서가 녹아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송승환은 난타의 성공으로 2014년 말에는 천만 관객을 돌파했고, 현재 전세계적으로 여러팀이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송승환 시력 저하

송승환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시력 저하로 실명 위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송승환은 현재 안경을 쓰고 있음에도 사람의 표정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시력이 나쁜 상태라고 합니다.


송승환은 평창 올림픽 공연을 준비하면서 급격한 시력 저하가 찾아왔다고 합니다. 계속 시력이 나빠지면서 실명 위기에까지 빠지게 되었지요. 그러나 다행히도 지금은 시력이 나빠지는 것이 멈췄다고 하네요.



<작년 말부터 나빠지던 것이 멈췄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서 창 밖으로 파란 하늘을 보는데 저도 모르게 입에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소리가 나오더라 이번에 연극을 하면서도 상대 배우의 얼굴이 안 보이지만 그래도 들을 수 있지 않나?>


송승환은 시력이 실명 위기에 있음에도 긍정적인 생각을 잃지 않았고, 지금도 무대 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송승환이 앞으로 더 이상 시력이 나빠지지 않기를 바라며, 이제는 건강을 좀 더 챙겨가며 대중들에게 더 많은 공연과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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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부자는 드라마와 연극에서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는 원로배우입니다. 강부자는 푸근한 인상으로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데요. 강부자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강부자 프로필

강부자 나이는 1941년 2월 8일생으로 고향은 충남 논산시입니다. 강부자 학력은 충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중퇴이며 데뷔는 1962년 KBS 2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를 했습니다.


강부자는 연극배우로 먼저 데뷔를 했고, 이후 KBS 공채 2기 탤런트로 드라마에 데뷔를 하게 되지요. 또한 2년 뒤에는 1964년 TBC 동양방송 공채 1기 탤런트로 연기자 활동을 했습니다.



강부자 연기 중년부인

강부자의 연기에 특이한 것은 20대부터 중년 부인의 역할을 많이 맡았다는 것입니다. 강부자는 20대의 나이였지만 중년 부인 또는 엄마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고, 자신이 맡은 역할을 잘 소화해내며 연기력을 다져갔지요.


푸근하고 선한 인상 때문에 20대부터 중년 부인의 역할을 많이 맡았지만 강부자는 이것을 불평하거나 그러지 않았습니다. 멜로드라마에 주인공으로 출연을 하고 싶다는 바램도 있었지만, 자신이 맡은 배역을 잘 소화해내며 프로다운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강부자 남편 이묵원

강부자 남편 이묵원 직업 역시 탤런트입니다. 이묵원 나이는 1983년생으로 강부자와 KBS 공채 2기 동기입니다. 이묵원 역시 수사반장, 제1공화국 등의 드라마에 출연을 했지만 배우로서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요.


강부자와 이묵원은 탤런트 데뷔 동기라는 것이 계기가 되어 서로 연인 사이로 발전 결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1967년 결혼식을 올렸지요.



강부자 이혼 루머이유

강부자는 남편 이묵원의 외도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강부자는 남편의 외도로 상당히 힘들었다고 하지요. 강부자 이혼, 강부자 재혼 등의 연관검색어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지만, 이런 이유 때문에 강부자가 이혼을 했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남편이 겉으로는 웃고 선해 보이지만 화나면 얼마나 무서운 줄 아냐? 신혼 때도 화가 좀 났구나 하면 뭐가 날아갔다. 신혼 장롱에 재떨이 던져서 장롱이 들어가기도 했다. 그렇게 무서운 사람이다>



<(외도를) 다 알면서 모른 척 했다. 첫째가 태어난 후에도 나가서 사흘씩 안 들어와도 난 입 밖으로 안 냈다. 와서 변명하면 모르는 척했다. 외도 상대인 여자가 나한테 와서 인사해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였다. 자식들이 있으니까 그저 인내했고 자식을 생각하며 53년간 가정을 지켰다>



그러나 남편 이묵원의 외도는 벌써 30~40년전의 이야기라고 하는데요. 황혼이 되어서는 두 사람이 누구보다 서로를 이해하며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한다고 합니다.


강부자 이묵원 부부는 결혼 50주년을 기념하여 두번째 결혼식을 치루기도 했는데요. 금혼식을 올린 이유는 <미국에 있는 아이들한테 할아버지 할머니가 이렇게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합니다.



강부자는 제 14대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으며, 상당수의 부동산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국회의원 생활 당시 강부자 재산이 공개되어 말들이 많이 나왔는데요. 남편이 전적으로 부동산에 투자를 했다고 하지요.


강부자는 여든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건강하게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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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정재순은 여자 원로배우 중의 한 명으로 주인공 가족의 할머니, 시어머니 등으로 많이 출연을 하고 있는 배우입니다. 정재순은 예능이나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기 때문에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얼굴을 보면 TV 드라마에서 한 번쯤 봤던 배우라고 생각할 수 있지요.



정재순 프로필

정재순 나이는 1947년 3월 15일생으로 고향은 충청남도 천안시입니다. 정재순은 천안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68년 데뷔를 했지요.


정재순은 1990년대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여러 인기 드라마를 만들어낸 최현경 방송작가의 페르소나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파랑새의 집>, <사랑해서 남주나>, <오늘만 같아라> 등 최현경 작가의 드라마에 7편 이상 출연을 했기 때문입니다.



정재순은 화가로서도 꾸준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최복규, 박상륭 등의 작가에게서 그림을 배우고 1990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총 다섯 차례의 개인전을 가졌습니다.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화가로서의 실력도 인정을 받아서 1988올림픽 스포츠 공모전, 서울미술제, 목우회 구상전 등에도 입상을 한 바 있습니다.


정재순은 아침드라마, 일일드라마, 주말드라마, 평일드라마 등등 상당히 많은 드라마에 출연을 한 베테랑 중년 배우인데요. 70대 중반의 나이에도 여전히 건강하고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지요.



정재순 연기생각

정재순은 <하나뿐인 내편>이 50%에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하며 엄청난 인기를 얻었을 때에 치매 연기로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정재순은 과거 예능에 출연을 하여서 자신이 맡은 역할에 집중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자신만의 연기 노하우를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2019년 3월 해피투게더 출연 <데뷔 50년만에 예능 첫 출연이다. 너무 떨린다>



<치매 연기를 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머리채를 휘어잡는 방법) 최대한 두피 가까이에서 머리카락을 잡아야 안 아프다>


<재미있었어요. 왜냐하면 치매 환자라는 배역 설정 때문에 오만 가지를 다 해봤거든요. 그동안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연기도 해보고요. 배우로서도 찾기 힘든 캐릭터였어요. 카타르시스도 느꼈어요. 특히 머리끄덩이를 있는 대로 낚아채잖아요. 처음에는 굉장히 힘들었는데 하다 보니까 요령이 생기더군요. 치매 증세가 나올 때 특히 나쁜 사람들에게 바른 소리도 마음껏 하고 말이죠>



정재순은 사실 극중 박금병으로 큰 사랑을 받았는데, 정재순이라는 본명보다 박금병이라는 이름으로 더 큰 사랑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하나뿐인 내편>이라는 드라마가 엄청난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지요.



<저는 연기자를 그냥 직업이라고 생각했어요. 연기자로서 다른 삶을 연기할 때 충실하게 살려내려고 노력했어요. 부족함도 많고 잘 모르니까 새 작품에 들어갈 때마다 항상 새로웠던 거죠. 연기자로서의 욕심을 좀 부려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쉬워요. 우선 성격 강한 박금병이랑 헤어졌으니 조금 쉬어야 할 것 같아요. 주어진 역할 뭐든 최선을 다하자는 게 제 원칙이니까 또 열심히 해야겠죠>



<100세 시대잖아요. 시니어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요. 치매 연기 같은 거 말고 힘과 용기와 아름다운과 즐거운 취미활동 같은 것들을 전달해줄 수 있는 그런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화가로서 시간이 허락되면 내년쯤 전시회를 가져볼까 해요. 전시회 열면 초대할게요>


70대 중반의 나이에도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정재순이 앞으로도 지금처럼 좋은 연기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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