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의 인기와 함께 가수 이미자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도 상당히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자는 엘리제의 여왕으로 수많은 히트곡을 만들어낸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미자 딸 가수 정재은에 대해서 알아볼까 합니다.



정재은 프로필

가수 정재은은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이미자 딸입니다. 정재은 나이는 1964년 8월 25일생으로 대한민국 가수이자 일본의 엔카 가수입니다. 정재은 소속사는 데이치쿠 엔터테인먼트입니다.


정재은은 이미자 전남편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정진흡 사이에 태어난 딸입니다. 그러나 1966년 이미자 정진흡의 이혼으로 아버지와 같이 생활을 했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진 빚으로 인하여 지방을 전전하며 비닐하우스에서 잠을 자거나 여인숙 주인에게 이미자의 딸이라고 말하며 잠동냥까지 하며 힘들게 살았다고 합니다.



정재은은 2세 때 이미자와 헤어진 뒤에 1969년 외할아버지가 정재은을 납치하여 이미자를 만났다고 합니다. 이때 이미자는 엄마와 함께 살레? 라고 물었고 정재은은 <어머니는 너무 많은걸 가졌고 아버지는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없으니 아버지와 함께 살겠습니다>라고 말을 한 뒤 몇 일후 헤어졌다고 합니다.



정재은은 1981년 정란여자상업고등학교에 재학 중일 때에 일본에서 처음 가수로 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KBS 가요대상에서 여자 신인상을 수상하는 등 앞으로가 촉망되는 가수였습니다.


그러나 1986년 아버지가 큰 빚을 지고 몰래 일본으로 도피를 떠나자 이로 인하여 갑자기 아버지의 채무를 모두 떠안게 된 정재은은 모든 것을 잃고 하루 아침에 거리로 내몰리게 되는 신세가 돼버렸지요. 이후 정재은은 결혼까지 하지만 안타깝게 이혼을 하게 됩니다.


정재은 남편 이혼이유

정재은은 1987년 강남 태극당 예식장에서 라디오 진행자로 활약을 하던 5살 연상 한신우와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러나 결혼과 동시에 성격 차이로 두 사람은 이혼을 하게 되지요.



정재은이 이혼을 겪은 후 공항에서 이미자를 우연히 마주쳤을 때 이미자는 <잘 살지 그랬니... 사람들 눈이 있으니 어서 가거라>는 말만 하고 자리를 피했다고 합니다.


정재은은 1999년 한국에서 활동을 하기가 점점 어려워지자 일본으로 건나가 엔카 가수로 인기를 얻고 있었던 김연자의 권유로 일본 음반계의 거물 김호식과 만남을 가졌고 일본에서 데뷔를 하게 됩니다.



이를 계기로 정재은은 일본에서 엔카 가수로 활동을 하며 일본 레코드대상 신인상을 수상하는 등 성공적으로 엔카 가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김연자, 장은숙, 계은숙 등과 함께 일본 가요계를 대표하는 엔카 한류가수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현재 정재은은 일본에서 생활을 하면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정재은 재혼은 하지 않았고 싱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정재은 어머니 이미자 관계

정재은이 한국에서 많은 활동을 하지 않은 이유 중의 하나가 어머니 이미자의 관계가 원인의 하나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미자는 첫남편 정진흡과 이혼을 한뒤 친딸 정재은을 외면하고 산 이야기나 후배 여가수 죽이기 등 나쁜 일화가 많아서 안 좋은 평도 많다고 할 수 있지요. 이미자의 치명적인 오점이자 약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정재은을 절대 친딸로 대우하지 않고 냉대했다는 것은 너무나도 잘 알려진 사실인데요. 정재은은 누가 봐도 이미자와 똑 닮은 얼굴을 가지고 있는데요. 부모가 이혼을 한 이후 친어머니 이미자를 단 3번 만났다고 합니다. 이미자는 딸에 대해서 가정사가 복잡하다고만 할 뿐 정확한 단절 이유는 밝히지 않았지요.


1990년대 후반 이미자는 자서전을 발행하기도 했는데요. 자서전에서도 딸아이 정재은을 지금껏 보지 않는 것에 대한 정확한 언급을 피했으며 이혼 후 아이를 보지 않았던 것은 전남편과 계속 얽히기 싫었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미자는 상당히 보수적인 여성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미자 자신도 어린 시절 생모와 헤어진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지요.


이런 어려움 속에 정재은이 이렇게 잘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미자가 화제가 될 때마다 항상 딸 정재은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어린시절 큰 상처를 가지고 있던 정재은이 가수로 더 성공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본 무대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정재은이 많은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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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김승진은 현재 불타는청춘에 출연을 하고 꾸준히 음반 활동을 하는 중년 가수입니다. 김승진에 대해서 한 번 알아볼까 합니다.


김승진 프로필

김승진 나이는 1968년 12월 31일생으로 고향은 서울 출신입니다. 김승진 학력은 대일외국어고등학교, 중앙대학교 연극영화학과입니다. 김승진 소속사는 JW 엔터테인먼트입니다. 김승진 데뷔는 1985년이지요.



김승진은 가수 겸 뮤지컬 배우로 미카엘 밴드로 결성해서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이 밴드의 이름은 본인의 예명인 미카엘에서 따 왔는데요. 대마초 흡연에 사기 피해로 인해서 잠시 활동을 중단한 적이 있습니다.



김승진은 앳된 소년의 얼굴과 감미로운 미성으로 활동 당시 소녀팬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습니다. 김승진은 데뷔 전에 음악다방 DJ를 활동하기도 했는데 데뷔전부터 그가 출연을 한다는 소문이 난 음악다방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서기도 했습니다.


김승진은 고등학생이던 1985년 1집 앨범 <오늘은 말할거야>라는 앨범으로 데뷔를 했습니다. 그리고 1980년 후반에 이름을 날린 박혜성과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지요.



김승진은 배우로도 활동을 했는데요. 1989년 KBS 주말드라마에 출연을 하면서 연기자로 활동을 하게 됩니다. 그 뒤 김승진은 2005년까지 7장의 개인 음반을 발매하며 꾸준히 음악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김승진 집안

김승진은 집안도 상당히 좋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김승진 아버지 김한국씨는 과거 피혁 회사를 운영했다고 하지요. 김승진은 어릴 때부터 노래에 재능을 보이며 각종 어린이 콩쿨에 나가 입상을 했고, 어린이 모델로도 활동을 했지만 외교관이 되기를 바랬던 김승진 아버지의 바람때문에 활동을 중단하게 됩니다.



그러나 가수가 되기 위해 단돈 5천원을 들고 집을 나와 10년간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됩니다.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을 한 김승진은 무명 생활을 보내면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7년 동안 외롭게 힘들게 보냈다. 계속 떠돌아다녔다. 지인의 녹음실에서 지냈다. 친구 집에 있었던 적도 있다. 그렇게 7년 동안 살았다>


<마음의 병이 들었다. 공황장애 우울증 때문에 8년 동안 약을 복용했다. 수면제도 2,500알 정도 먹었다> 김승진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 데뷔를 했고, 데뷔 앨범 <오늘은 말할 거야>가 인기를 끌면서 이후 스잔, 유리창에 그린 안경 등 히트곡을 남기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게 됩니다.



김승진은 쌍꺼풀 없는 반전 눈매와 가녀린 음색으로 미소년 가수로 주목을 받게 되었는데요. 하지만 어느새 인기가 시들해졌고 대중들에게 잊혀져갔습니다.



김승진 결혼 이혼루머

김승진은 오랜 공백기에 결혼을 했고, 이혼을 했다는 루머가 있었지만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김승진이 결혼을 하지 못한 이유는 공황장애 등으로 인한 마음에 병 그리고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음악에 대한 열정이 너무나도 컸기 때문입니다.


복면가왕에 출연을 해서 <10년째 녹음만 하는 가수>라고 언급을 하기도 했습니다. 음악에 대한 열정이 아직도 식지 않았지만 그만큼 가수로서는 계속 활동을 하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김승진은 불타는청춘에 출연을 하여 결혼에 대한 의지를 밝히기도 했는데요. <지금까지는 솔로였지만 2020년에는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 딸이든 아들이든 상관없이 자식이 한 명 있었으면 좋겠다>


불타는청춘을 통하여 다시 방송 활동을 시작했고, 가수에 대한 열정 역시 상당한 김승진이 앞으로도 지금처럼 꾸준히 가수 활동을 해주길 바라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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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배우 이민영의 활동이 상당히 활발한 것 같습니다. 2019년 드라마 <닥터 프리즈너>에서 복혜수 역으로 좋은 모습을 보였던 이민영은 2020년 11월에 방영되는 임성한 작가의 <결혼작곡 이혼작사>라는 작품에 출연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민영 프로필

이민영은 40대 중반의 나이에도 여전히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는데요. 이민영 나이는 1976년 2월 6일생입니다. 이민영 키는 165cm이며 학력은 단국대학교이지요. 이민영 데뷔는 1994년 MBC 공채 탤런트 23기로 데뷔를 했습니다.


이민영 결혼은 한 번 했으며, 전남편 이찬과 결혼 폭력, 이혼, 혼인 취소 등등 여러 사건에 휘말리는 오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민영 전남편 이찬

이미영 전남편 이찬 나이는 이민영과 동갑으로 1999년 MBC <하나뿐인 당신>을 통하여 처음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05년 드라마 <부모님 전상서>에 함께 출연을 하며 호감을 가지게 되고 2006년 2월부터 정식 교제를 시작했다고 알려졌지요.



그러다 11월 3일 언론을 통하여 결혼을 발표했고 12월 10일 결혼식을 올렸으며 인도네시아로 신혼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신혼여행 귀국 후 2006년 12월 19일 승용차 안에서 말다툼을 벌이다 폭행사고가 발생을 했고, 이 때 임신중이었던 이민영은 아이를 잃게 되지요.


당시 폭력에 의한 유산이었는지 등이 크게 쟁점이 되었고, 언론을 통하여 연일 보도가 되면서 큰 사건으로 커지게 됩니다. 그리고 쌍방간의 폭로전까지 벌이면서 두 사람의 사이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지게 됩니다.



두 사람은 결국 갈라서게 되었는데, 두 사람은 법적으로 미혼 상태였습니다. 결혼식을 올리고 혼인신고를 하지 않아서 법적인 부부로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인데요. 12일 만에 파경을 맞았기에 연예인 출신 부부 중에서 최단기로 이혼을 한 오점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이민영 이찬 이혼이유(이혼사유) 결별이유는 이민영은 가정 폭력을 원인으로 삼았고 이찬은 과다한 혼수 요구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찬은 무엇보다 폭력을 행사한 것은 분명 잘못된 행동이었고 이것이 두 사람의 사이를 걷잡을 수 없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이민영은 여전히 솔로이며, 이찬은 현재 결혼을 했으며 트로트 가수로도 도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민영 복귀와 활동

이민영 이찬의 사건은 꽤 오랫동안 휴유증으로 남겨졌고 이민영 역시 오랜시간 방송 활동을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렇게 5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2011년 <발효가족>으로 복귀를 하게 되지요.



이민영의 활동은 본인이 전성기를 달리던 때처럼 그렇게 활발하지도 않고 예능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전남편 이찬과의 사건이 너무나도 컸고, 이로 인하여 그녀의 연예 활동도 상당히 위축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매년 한 작품 이상씩 출연을 하면서 다시 배우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하고 있는데요. 연기에 대한 욕심과 열정은 상당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민영은 여전히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좋은 사람이 주위에 있다면 충분히 결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이민영이 앞으로도 좋은 작품으로 대중들을 만나길 바라며, 대중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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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양미경은 매년 한 편이상의 작품에 꾸준히 출연을 하고 있는 중견배우입니다. 과거에는 뛰어난 미모의 여배우로 큰 사랑을 받은 양미경은 현재 다양한 중년 여배우의 모습을 보여주며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양미경 프로필

양미경 나이는 1961년 7월 25일생입니다. 양미경 고향은 제주도이며, 학력은 숭의여자전문대학교 응용미술학과이지요. 양미경 데뷔는 1983년 KBS 10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를 했습니다.



양미경은 1984년 드라마 미망인의 지나가는 사람 역으로 처음 등장을 했다가 이후 수많은 드라마에서 주로 단역을 맡게 됩니다. 그러다가 2003년 드라마 <대장금>에서 한상궁 역으로 크게 인지도를 높였지요. 20대~30대에는 여배우로서 큰 사랑을 받지는 못했지만 40대를 넘어서면서 점차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이제는 어엿한 중견 배우로 활약을 하게 됩니다.


양미경은 이후 여러 드라마에서 가슴 시린 모성애 연기를 선보였고 주인공들의 어머니 역으로도 많이 출연을 하고 있습니다. 양미경은 슬프고 애절한 연기를 할 때 그 존재감이 드러나는데요.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을 온 몸으로 연기하는 배우 중의 한 명입니다.



양미경 남편 허성룡 직업

양미경 남편 직업은 KBS에서 조연출로도 일을 했던 허성룡이라는 사람입니다. 두 사람은 가요드라마 <바람 바람 바람>을 통하여 처음 만나게 되는데요. 자전거 타는 장면에서 양미경이 한강에 사고로 빠지게 되고, 그 때 양미경을 구해준 사람이 지금의 남편 허성룡이었던 것 같습니다.


<살집이 있어서 안 좋아했는데 그 이후로 그 사람이 너무 멋져 보이더군요>



그렇게 양미경은 남편 허성룡을 알게 되었고 좋은 기억을 가진채 헤어지고 두 사람은 6개월 후 우연히 방송국 로비에서 촬영대기를 하다가 또 만나게 됩니다. 그렇기 대화를 시작한 두 사람은 대화를 하면할수록 잘 통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러다가 사귀기 시작한 것입니다.



양미경은 예쁜 미모의 소유자로 잘생긴 남자 배우와 많이 촬영을 했을텐데요. 외모 보다는 그 사람의 심성과 성격을 중요시 했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결혼 상대로 상당히 현명한 선택이었지요.


그러다 두 사람은 6개월 연애를 하고 1988년 5월 2일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이후 허성룡은 KBS 예능국 피디를 그만두고 대경대 방송연예과에서 강의를 하다가 모 선박회사 임원으로 일하게 됩니다. 후에는 국회방송에서도 일을 했다고 알려져 있지요.



양미경 이혼, 양미경 재혼 등의 루머는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양미경은 과거 친 남동생이 양미경 매니저 일을 하면서 수익금 정산 등의 문제로 남동생과 갈등을 빚기도 했는데요. 이 때문에 가족 관계가 상당히 논란이 된 적이 있습니다.


재판 결과 양미경의 승소로 당시 재판부는 <누나의 출연료를 횡령하고 가족에게 행패를 부렸음에도 오히려 누나를 무고하는 등 죄질이 좋지 않다며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합니다>



이 당시 양미경은 연예계 은퇴 기로에 있었지만 남편이 옆에서 큰 힘이 되면서 잘 극복했고, 지금처럼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양미경이 앞으로도 지금처럼 좋은 연기를 보여주길 바라며, 오랫동안 사랑 받는 배우로 꾸준히 활동을 이어가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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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병진은 코미디언 출신으로 톱MC의 자리에 오른 인물입니다. 코미디언, MC뿐만 아니라 사업가라는 타이틀도 가지고 있는데요. 개그맨 출신으로 톱MC 자리에 오른 최초의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병진은 <일요일 일요일 밤에> 메인 MC를 시작으로 주병진쇼 등 주로 토크쇼를 맡아서 진행했는데요. 주병진은 코미디언 출신답게 방송 전반에 영향을 끼치며 재치와 순발력으로 프로그램을 이끌어갔습니다.



주병진 프로필

주병진 나이는 1959년 4월 19일생입니다. 주병진 고향은 서울 출신으로 주병진 키는 175cm입니다. 주병진 학력은 중앙대학교이며, 데뷔는 1977년 TBC 전속 개그맨으로 데뷔를 했지요.



주병진은 최고의 인기스타가 되었고 이후 속옷사업으로 성공한 사업가가 되기도 했습니다. 주병진의 앞길은 거침없었고 하는 일마다 승승장구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독이 되었던 것일까요? 주병진은 음주운전과 불법 도박 등 불미스러운 사건에 여러 차례 휘말리며 불명예스럽게 이름이 다시 거론이 되기도 했습니다.


최근 주병진은 <개밥 주는 남자>라는 예능에 출연을 했고, 예능 게스트로도 간간히 출연을 하면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주병진 아내(부인) 결혼 생각

주병진은 한갑이 넘은 나이 때문에 그가 결혼을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주병진은 한 번도 결혼을 한 적이 없으며, 주병진 아내, 주병진 부인 이혼 등의 루머는 전혀 사실이 아니지요.


주병진은 과거 꽃뱀사건에 휘말리면서 논란이 된 적이 있습니다. 주병진이 아직까지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은 여자에게 배신을 당한 적이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 완전히 질려버린 것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병진은 미우새에 출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주병진의 집도 공개가 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서울 한복판이 정원이 있는 넓고 웅장한 빌라에 살고 있었습니다. 주병진의 집에는 없는 것이 없었으며 심지어 사우나까지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주병진의 내부에 사우나가 있었는데 거기에는 화장대에 의자가 두개 있었습니다. <아내를 위해 만든 공간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성공을 하기 전에 결혼 안하겠다고 했는데 남들은 인정하는데 나는 아직 인정 못하고 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것 같다. 아직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젊게 보이기 위해서 관리를 한다>



<청바지 입으려고 살을 빼고 항상 염색을 한다. 염색 안하면 머리의 80%는 흰머리다> 주병진이 독신주의자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독신주의자는 아니고 아직까지 결혼을 할 만한 여성을 만나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주병진 사업 성공

주병진은 속옷 사업에 큰 성공을 했고 수백억원이 넘는 돈을 벌었습니다. 하지만 돈이 행복과 직결되지는 않는다고 털어놓았습니다.



<회사를 코스닥에 상장시킨 뒤 수백억원의 목돈이 들어왔지만 허탈했다. 나아가야 할 목표가 없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의 목표는 끝인가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행복하기도 했지만 1~2달이면 끝이다. 그 이후의 허전함은 말로 다할 수 없다. 화려하면 화려할수록 외로움도 커져갔다>


<수백억원을 벌었지만 혼자 남고 결혼도 못했다. 사업에 대한 욕심 때문에 (결혼) 때를 놓쳤다>


주병진은 방송에 자주 출연을 하지 않은 이유도 그동안 여러 사건에 휘말리면서 그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고 고백을 한 적이 있습니다.


<될 수 있으면 예능 프로그램은 사양을 하려고 한다. 그게 앞으로의 내 방향이다. 트라우마 때문이다>



<트라우마가 있어서 누군가 나에 대해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하거나 부풀려서 평가를 하고 상상을 해서 이야기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마치 교통사고를 한 번 낸 사람이 인도에서 뛰는 사람만 봐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방송을 극도로 자제하게 된다>


주병진은 60세가 넘겨서 뮤지컬에도 도전을 하고 꾸준히 노력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 사건에 휘말리면서 본인이 원하는대로 활동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 것 같은데요. 주병진이 앞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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