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한혜숙은 젊은시절 상당한 미모의 소유자로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한혜숙은 1970년대 최고의 여배우 중의 한 명으로 평가를 받았습니다.


한혜숙 프로필

한혜숙 나이는 1951년 8월 20일생으로 고향은 부산 출신입니다. 한혜숙 학력은 덕성여자고등학교이며 데뷔는 1970년 MBC 2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를 했습니다.



한혜숙은 MBC 탤런트로 데뷔를 했으마 1971년 KBS 드라마 <꿈나무>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975년 방영된 <꽃피는 팔도강산>으로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지요.


한혜숙은 1979년 KBS 대하드라마 <토지>에서 제1대 최서희 역할로 출연을 하면서 큰 주목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 <전설의 고향>에서 구미호 역할을 했다는 것입니다. 전설의 고향 구미호로 가장 큰 주목과 인기를 끌었던 배우가 한혜숙이라고 할 수 있지요.



한혜숙은 지적이고 도도한 매력으로 여자주인공 역할을 주로 맡았으며, 도시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어서 남성팬들의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한혜숙의 성격만큼은 여장부스타일이었는데요. 올곧은 성격으로 인해서 PD와의 트러블도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하차를 하거나 방송에 나오지 못한 적도 있다고 하지요.



한혜숙 박정희 루머

한혜숙은 스캔들이나 루머로 곤혹을 겪은 적도 있습니다. 한혜숙은 고졸이라는 학력은 위조하고 싶을만도 한데, 정도만 걸었습니다.


한혜숙은 과거 박정희 대통령과의 루머에 휩싸이게 됩니다. 당시 박정희는 궁정동 안가에 여자 탤런트와 가수, 여대생을 불러서 음주가무를 즐겼다는 루머가 세상에 퍼졌는데 후일 이것이 사실로 드러났지요.


그리고 한혜숙은 정주영과 관련된 루머에 휩싸이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한혜숙이 당시 최고의 스타였고, 손꼽히는 미모를 가진 여배우였기 때문입니다.



한혜숙 불교

한혜숙 종교는 불교입니다. 한혜숙의 아버지가 위암으로 돌아가신 후 불교에 더욱 빠져들게 됩니다.


<29세때 아버지가 위암으로 돌아가셨는데 딸다섯 중 장녀인 저는 특별히 아버지와 정이 깊었어요.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저에게 아직 시집 안 간 동생들을 생각해서 몸가짐을 깨끗이 하라라는 유언을 남기셨어요>


<만약 제가 연기자가 되지 않았으면 비구니가 됐을 것 같아요. 내세에 다시 여성으로 태어나면 비구니가 되고 싶고요. 저도 죽을 준비를 해야 하는데 그 전에 소원이 있어요. 암자를 지어보고 그곳에 의탁할 곳이 없는 노인들을 위한 복지시설을 만드는 것이죠>



한혜숙 남편 결혼 안한이유

한혜숙은 결혼을 하지 않은 미혼입니다. 한혜숙 남편, 한혜숙 이혼 등의 연관검색어도 있는데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지요.


한혜숙이 결혼을 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실질적인 가장이 되었고, 여동생들을 위해서 스스로 희생했던 것입니다.


<어머니는 저에게 더 이상 결혼을 강요하지 않아요. 이제 포기하신 것 같아요. 사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매년 생일날 떡을 만들어주시면서 시집가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요즘 그런 말씀도 안하시죠>



<제가 혼자 살다보니 한때 숨겨둔 아이가 미국에 있다. 프랑스에 있다 등의 루머가 돌기도 했는데 지금 같아서는 정말 자식이 하나 있었으면 하는 심정이에요>


<너무나 외로워서 종교에 많이 의지하고 취미생활도 즐기면서 나름대로 바쁘게 지내죠. 종교는 저 스스로 절제하게 만드는 힘을 줘요. 제가 그나마 아직까지 품위를 지키는 연기자라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것도 다 종교 덕분인 것 같아요>



한혜숙이 아쉬운 이유는 1970~80년대 최고 미모의 여배우임에도 작품을 많이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최근 10여년간은 거의 작품 활동을 하지 않고 있는데요. 그녀가 컴백을 할 수 있는 가능성도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한혜숙이 건강한 모습으로 대중들에게 좋은 작품으로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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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혜선은 단역으로 시작하여 주연까지 차근차근 성장한 배우 중의 한 명입니다. 신혜선 데뷔는 2012년 학교 2013으로 데뷔를 했는데요. 비교적 늦은 나이에 데뷔를 했지요.



신혜선 프로필

신혜선 나이는 1989년 8월 31일생입니다. 신혜선 키는 172cm이며 학력은 세종대학교 영화예술학과입니다. 신혜선 소속사는 YNK엔터테인먼트입니다.


신혜선은 어렸을 대부터 꿈이 배우였습니다. 드라마 <가을동화>를 보고 원빈을 보고 싶어서 연기자를 꿈꿨고 이후 한 번도 변하지 않고 연기자의 꿈을 가지고 한 길만 걸었습니다. 신혜선은 중학교 3학년 때 연기학원을 처음 다녔고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연기를 전공하게 됩니다.



그러다 처음 합격한 오디션이 바로 <학교 2013>입니다. 신혜선인 이후 조연급 꾸준히 활동을 하다가 <오 나의 귀신님>에서 교통사고 발레리나 꿈을 접은 주인공 조정석의 동생 강은희 역을 맡으며 조금씩 주목을 받게 되지요.



신혜선은 2016년 2월에 개봉한 영화 <검사외전>에서 강동원과의 키스신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신혜선은 강동원과의 키스신이 필름이 끊긴 것처럼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언급했습니다.


신혜선 <황금빛 내인생>

신혜선이 주연급 배우로 자리를 잡게 만든 작품이 2017년 9월에 방영된 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을 통해서입니다. 신혜선은 여주인공 역할을 맡으며 섬세한 연기력으로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시청률 역시 최고 시청률 40%가 넘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고, 이를 통하여 신혜선은 완벽히 주연급 배우로 성장을 하게 되지요. 신혜선은 드라마, 영화계의 러브콜이 줄을 이었고 이 작품으로 연기 대상에서 처음으로 상을 받게 됩니다.



신혜선에게 <황금빛 내인생>은 자신의 인생을 바꿔준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신혜선은 단역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왔고, 오랜 경험이 본인의 연기력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혜선은 쉬지 않고 작품을 하는 배우 중의 한 명입니다. 거의 휴식기없이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데요. 이에 대해서 신혜선은 <특별한 이유는 없다. 자꾸 연기하고 싶은 캐릭터들이 있고 지금 열심히 일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데뷔도 늦게 했고 혼자서 연기를 했던 기간이 있어서 그런지 계속 연기를 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는 것 같다. 일을 그만둘 때까지 불안감은 계속될 것 같다. 너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불안감이 있는게 아닐까 생각한다. 오히려 큰 열정과 욕심이 없었더라면 불안감도 없었겠죠. 어렸을 때부터 연기자가 되고 싶었고 그래서 쉬지 않고 일을 하는 것 같아요>



신혜선 결혼 생각

이제 30대에 접어든 신혜선은 결혼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나이입니다. 신혜선을 결혼 생각에 대해서 <최근 친구들이 결혼을 많이 하더라. 나는 그냥 일이나 열심히 해야겠다. 결혼을 할 수 있을지 요즘 그게 참 의문이다>


<결혼에 대한 생각을 진지하게 해보지도 않았고 결혼을 늦게 하고 싶은 마음이다. 이상형은 계속 바뀌고 있어서 지금 딱 정해져 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지금은 연기나 열심히 해야겠다>



<연기는 오래오래 할 거예요. 관둔다는 생각은 안해봤어요. 지금은 악플도 감사하고 칭찬도 감사해요. 그래도 제가 어떤 역할을 했을 때 호감인 배우였으면 좋겠어요. 대중이 편안하게 볼 수 있는 배우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신혜선이 연기력만큼은 대중들에게 인정 받았기 때문에 앞으로 좋은 작품을 만나는 것만 남은 것 같습니다. 신혜선이 다양한 작품을 통하여 대중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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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시언은 예능을 통하여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한 배우입니다. 바로 싱글 관찰 예능 <나 혼자 산다>를 통하여 대중들의 큰 사랑을 받게 되고, 이시언의 인지도는 급격하게 상승하게 되지요.



이시언에게 예능 나혼자산다의 출연은 최고의 선택이자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낸 출연이었던 것 같습니다. 예능을 통하여 인지도를 높인 이시언은 이후 각종 예능 그리고 영화와 드라마에 연이어 캐스팅되며 전성기를 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시언 프로필

이시언 본명은 이보연으로 이시언이라는 예명은 그의 드라마 데뷔작 감독이었던 곽경택 감독이 직접 받아왔다고 합니다. 다소 여성스러운 느낌의 본명을 가진 것도 예명으로 활동하는 이유 중의 하나라고 하지요.



이시언 나이는 1982년 7월 3일생으로 고향은 부산 출신입니다. 학력은 서울예대이며, 현 소속사는 스토리제이컴퍼이니입니다. 이시언은 부산 출신답게 사투리에 능하며 생활연기가 강점인 배우입니다.


이시언이 나혼자산다로 유명세를 탔기 때문에 그가 배우로서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시언은 생활연기가 강하고 실제로도 연기력이 좋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 캐릭터 그리고 많은 나이차이를 커버할 만큼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시언 나혼자산다 하차이유

이시언은 2016년 9월 23일 방송된 나혼자산다 무지개 라이브에서 30대 독신 남자의 생활을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보여줘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큰 화제가 되어 나혼산 정식 무지개 멤버로 합류하게 되지요.



그리고 같은 무지개 멤버인 기안84, 헨리와 함께 허당끼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세 얼간이 컨셉을 잡아 맏형 1얼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 시언이 4년이 넘는 시간을 나혼자산다에 출연을 했기 때문에 그간 워낙 많은 에피소드가 있기 때문에 모두 언급할 수는 없을 것 같네요.


이시언이 나혼자산다에 하차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 일각에서는 연인 서지승과의 결혼설이 제기 되었습니다. 이시언은 배우 서지승과 2018년 2월부터 공개 연애를 하고 있습니다. 이시언의 나이가 40세를 앞두고 있기 때문에(82년생), 그가 결혼할 나이도 되었고, 공개연애를 했기 때문에 결혼이 임박하지 않았을까 하는 예상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나혼자산다는 싱글 관찰예능이기 때문에 결혼 이후 출연이 힘들기 때문에 결혼이 이유였다면 하차를 하는 것이 당연하지요. 하지만 이시언은 연기 활동때문에 하차를 한다고 강조를 했습니다.


<제작진과의 긴 상의 끝에 연기자로서 좀 더 충실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전달 드렸고 많은 고민 끝에 함께 이 같은 결정을 내리게 됐다. 앞으로도 연기자로서 작품을 통해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이시언 집 아파트 청약

이시언이 나혼자산다를 통하여 얻은 것이 있습니다. 바로 엄청난 가격의 이시언의 아파트입니다. 이시언은 대학 졸업 후 꾸준히 주택 청약에 들었고, 나혼자산다 출연 중에 아파트 청약에도 당첨이 되었습니다.



이시언이 당첨된 아파트로 이사하는 모습이 나혼자산다를 통하여 공개가 되었는데요. 데뷔 10년만에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룬 이시언은 자신의 집을 마련하면서 집값 역시 대박이 났습니다.


이시언이 당첨된 아파트는 서울 동작구 상도동의 한 아파트인데 이시언은 아파트 분양을 약 7억원에 했는데 집값이 무려 2배나 올랐다고 알려졌습니다. 이시언은 내집마련의 꿈과 함께 본인의 배우 활동 역시 대박이 났기 때문에 여러모로 나혼자산다의 최대 수혜자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이시언은 <나혼자산다> 출연 이후 좋은 일들만 계속 생겼던 것 같습니다. 이 때문에 이시언이 나혼자산다에 하차를 하면서 그렇게 많은 눈물을 흘리는 것이겠지요.


연예인들의 경우 하나의 작품(방송)만 잘만나면 인생이 완전히 바뀌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시언에게 <나혼자산다>는 그런 방송이 아니었을까 생각되는데요. 나혼자산다를 통해서 이시언을 만날 수 없지만 본인의 바람대로 배우로서 다양한 작품으로 그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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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우리 이혼했어요>라는 예능에 박재훈과 전부인이었던 박혜영이 출연을 했습니다. 두 사람은 과거 부부예능에 많이 출연을 하며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줬었는데 한동안 출연을 하지 않더니 이혼을 했던 것이었습니다.


박재훈과 박혜영 전부부에 대해서 한 번 알아볼까 합니다.



박재훈 프로필

박재훈은 모델 출신으로 잘 알려져 있는 배우입니다. 최근까지 배우로 더 많은 활동을 했는데요. 박재훈 나이는 1971년 6월 8일생으로 1991년 모델라인 28기로 데뷔를 했습니다.


박재훈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한다면 큰 키와 긴 머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때 짧은 스포츠 머리도 했지만, 박재훈은 긴머리로 한 시간이 더 길다고 할 수 있지요.



박재훈은 농구선수 출신으로 고등학교 시절 시합을 하다가 부상을 당했고, 어깨와 무릎 연골을 제거했습니다. 이후에도 계속 농구를 해 연세대학교에 진학을 하게 되지요.


그런데 또 대학교에서 똑같은 부위에 부상을 당했고, 농구를 그만두고 모델로 데뷔를 하게 됩니다. 박재훈은 군면제를 받았는데, 군대를 가지 않은 이유도 어깨와 무릎 부상 때문이지요.



박재훈은 농구선수 출신의 모델로 활동을 하다가 드라마 <마지막 승부>에 특별출연을 하게 되고, 이 때 단숨에 스타덤에 오르게 되지요. 드라마 자체가 워낙 인기가 있었고 당시 농구붐이 불고 있었기 때문에 박재훈은 인기를 얻게 되지요.


그러나 1990년대만하더라도 187cm라는 큰 키가 상당한 부담이 있었고 이 때문에 배역 제한으로 여러 배역에 출연을 하지 못하게 되지요. 요즘과 같은 시대라면 윤균상이나 이광수처럼 190cm 가까이 되는 배우들이 많이 활동을 했지만 당시에는 너무 큰 키였지요.


이 때문에 배우보다는 모델일에만 전념을 했고, 2010년 이후 다시 배우 활동 시작 후에는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지 못했지요. 박재훈은 현재 서울예술전문학교에서 모델연기하고가 전임교수로 지내고 있습니다.



박재훈 부인(아내) 박혜영 결혼

박재훈 아내 박혜영은 레슬링 국가대표 출신입니다. 박혜영 나이는 1975년생으로 여자 레슬링 국가대표 1호라는 수식어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뛰어난 레슬링 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박혜영은 레슬링 선수임에도 예쁜 외모를 가지고 있었고, 심권호의 소개로 전남편 박재훈을 만나게 됩니다. 두 사람은 2006년 심권호의 소개로 처음 만나게 되었고, 교제를 얼마한 후에 결혼까지 하게 되지요.



<남편에게 첫눈에 반해 결혼을 결정했다. 결혼 초 남편의 떠받들며 아내의 삶을 살았다. 그러나 부모님의 억대 빚을 갚자마자 결혼한 박재훈은 돈 한푼도 없이 처가살이를 시작했다. 남편 대신에 주얼리샵을 운영하며 온 가족의 생기를 이어갔다>


<신혼초 손하나 까닥 안하던 남편은 지금은 설거지와 청소 빨래를 하며 자상한 남편이나 아내의 눈치를 보는 남편으로 전락했다>


박재훈 박혜영은 부부예능에 출연을 하여 컨셉인지 실제인지 모르겠으나 잦은 다툼을 했고, 여러 갈등으로 방송에서도 이혼을 언급할 정도였습니다.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이 순조롭지만은 않았던 것 같네요.



박재훈 박혜영 이혼이유(이혼사유)는 결혼 생활 중에 잦은 다툼과 성격 차이로 이혼을 결정하게 된 것입니다.


박재훈 박혜영 <우리 이혼했어요>

두 사람은 <우리 이혼했어요>를 통하여 이혼 발표를 하지 않은 이유와 서로에 대해서 하지 못했던 말을 언급했습니다.


박재훈: <우리가 이혼 발표를 안했었잖아. 사실 필요성을 못 느꼈었지>



박혜영: <우리가 이혼한 지 5년이 넘었다. 내가 박재훈 아내로 방송에 많이 나갔잖아. 우리 결혼이 방송으로 시작해서 그걸로 끝난 것 같다. 근데 이혼을 말하지 않은 게 사람들을 농락하는 것 같았다. 이게 몹쓸 일이더라. 우리가 불편한 관계도 아니고 이혼 공개가 훨씬 낫다 싶었다>


한편으로는 두 사람이 부부예능에 출연을 하지 않았더라면 실제로 이혼까지 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오히려 부부예능을 함께 하면서 부부가 서로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서로의 이야기를 방송에서 하다보니 불편했던 점도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던 것 같습니다. 방송 때문에 오히려 부부사이의 갈등이 더 생긴 것이 아니었을까요?



박혜영과 박재훈은 서로의 속내를 드러내며 미안했던 점도 털어놓고 진솔한 대화를 했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의외였던 것은 두 사람이 미움의 감정보다 상대를 향한 미안함과 안쓰럽고 애틋한 감정이 더 큰 것 같았습니다.


어쩌면 <우리 이혼했어요>를 통하여 다시 재기의 생각을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나 서로의 속내를 <우리 이혼했어요>를 통하여 모두 털어내고 두 사람이 좀 더 홀가분한 마음으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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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이자 현 축구코치로 활약하고 있는 이을용은 대중들에게 큰 인상을 심어준 축구선수입니다. 을용타라는 별명과 함께 안정환 절친으로 안정환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에 동반 출연을 하기도 하는데요. 이을용 선수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이을용 프로필

이을용 나이는 1976년생으로 고향은 강원도 태백시입니다. 이을용 학력은 강릉상고, 단국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이을용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을용타와 2002년 한일 월드컵의 모습입니다.


이을용은 월드컵 조별예선전에서 미국전에 페널티킥 실축을 했지만, 당시 굉장한 활약을 했고 공격포인트 3개를 기록한 활약을 합니다.


이을용은 어린시절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 성장을 합니다. 이을용 아버지가 사업을 몇번 실패했고, IMF시절 정리해고를 당하는 등 불우한 가정 환경 속에 이을용은 축구에만 전념하게 되지요.



<울산대 체육학과에 입학을 했다가 일찌감치 선배랑 치고 받고 싸우고 짐을 싸들고 나왔어요. 결국 충북 제천으로 향했는데 돈을 벌 생각으로 서울회관이라는 나이트클럽에서 일을 했습니다. 웨이터 생활을 한 건 아니었고요 업소에서 이런저런 심부름을 하며 자잘한 업무처리를 했지요. 그러다 그 업소에 방문한 축구인의 눈에 띄어 울산대 최만희 감독한테 다시 붙들려갔어요. 만약 그때 그 나이트클럽에서 축구인을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의 이을용도 없었을 것입니다>


사람의 인생이란 참으로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우연한 기회와 계기로 인생에 큰 변화가 있을 수도 있으니 말이죠. 하지만 이을용은 울산대에 들어갔지만 또다시 팀을 뛰쳐나왔다고 합니다. 이을용의 성격이 보통이 아니었던 것 같네요.



그러다 이을용을 구해준 축구 지도자가 또 있는데요. 바로 한국철도 감독을 맡고 있었던 이현창 감독입니다. <결국 저는 이 감독 덕분에 한국철도에 입단을 한 후 실업팀 생활을 했고 감독님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이 챙겨주셨다>고 합니다.


<당시 월급을 매달 80만원 정도 받았는데 그 돈을 저한테 주지 않으시고 따로 관리하신 다음 제가 상무갈 때 통장으로 건네주시더라구요. 통장에는 1000만원이 훨씬 넘는 거액이 들어있었어요. 그 통장을 받아들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 분은 감독님이 아닌 아버지셨어요>


이현창 감독님과 같은 지도자가 있었기 때문에 대한민국 축구에 이을용 같은 선수가 나올 수 있었고, 소중한 인재를 잃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을용타란?

이을용에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을용타입니다. 을용타 사건은 2003년 동아시아대회에서 중국과의 경기가 펼쳐졌는데 이을용은 중국팀의 거친 플레이에 공격수 리이의 뒤통수를 후려 갈긴 후 위풍당당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결국 퇴장을 당하게 되지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을용이 국민들에게 비난을 받기보다는 속시원하다는 반응을 많이 보였고, 현재도 다양한 짤로 종종 사용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선수들의 경우 중국과의 경기에서 거친플레이로 인하여 부상을 당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지요.



이을용 부인(아내) 이숙

이을용이 축구선수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에도 아내의 내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을용이 축구선수로 성공하기 전에 아내 이숙을 만나게 되는데요. 이을용 아내 직업은 서울 방배동에서 피아노 교습소 강사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1995년 이을용 소속팀이었던 한국철도 선배의 소개로 처음 만났는데요. 아내가 3살 연상이었습니다. 이을용은 아내의 활달한 성격을 보고 첫눈에 반했고, 솔직한 이을용의 마음에 아내 역시 이을용에게 끌리게 됩니다.



장래가 불안한 축구선수였던 이을용은 아내의 내조로 축구선수로 더욱 전념할 수 있었고 국가대표 최고의 왼발 키커로 활약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두 사람은 1999년 11월 27일 결혼식을 올렸고, 이을용은 결혼 이후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쓸 수 있게 됩니다.


결혼 이후 이을용은 아들 2명과 딸 1명을 낳게 되는데요. 이을용 아들 이태석은 <날아라 슛돌이>에 출연을 한 적도 있고 현재 축구 선수로 활약을 하고 있습니다.



이을용 아들 이태석은 오산고를 졸업하고 올해 FC서울 유니폼을 입게 되었는데요. 이태석은 청소년 국가대표 선수로 포지션은 이을용과 같은 측면수비수입니다. 아버지에 이어서 프로 축구 선수로 활약하는 모습을 곧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을용 아들 이태석의 활약을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네요


이을용이 만약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축구를 했었더라면 지금보다 더 좋은 선수가 되지 않았을까요? 어려운 환경 속에서 고난과 역경을 뚫고 축구선수로 성공을 한 이을용의 의지와 노력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이을용이 앞으로도 지금처럼 대한민국의 축구 발전에 많은 힘이 되는 코치로 활약해주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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